고양이 한마리가 가게에 들어와서 배를 깔고 누웠다.
닭집한 5년의 시간 그 중 3년 가깝게 찾아오는 녀석을
나는 부엉이라는 이름로 녀석을 부른다.
무언가에 놀란듯 동그란 눈,
그리고 아기의 주먹과 같이 꼬리 끝이 뭉퉁하게 말려있다.
앞가게 사장님 말로는 유전적인 기형이라고 하는데
부엉이는 그 의견에 대해 어떤 생각을 들어보진 못했다.
난 고양이의 말을 배운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부엉이도 사람의 말을 배울 생각은 없을테니까.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5년이란 시간을 지나쳐갔다.
부엉이를 처음 본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녀석을 처음 본 순간을 찾아 기억을 뒤지다보면 세마리의 고양이 뒤에 부엉이가 있다.
세마리, 소위 삼총사라고 불렀던 망덕, 배트맨, 흑염소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
손질한 닭의 부산물을 그릇에 담아 두면 망덕이가 제일 먼저 와서 먹는다.
그러면 눈치를 보다가 흑염소가 밥그릇에 대가리를 들이민다.
망덕이가 신경쓰지 않고 먹기만 하면 흑염소가 허겁지겁 먹는다.
그 옆에서 바라보며 안달 난 배트맨, 그러나 밥그릇에 대가리를 들이밀지 못한다.
서열이 식욕보다 앞선다, 그 들에게는.
배트맨은 망덕이가 식사를 마칠떄까지 그렇게 안달하며 지켜보기만 한다.
망덕이가 자리를 떴을때 배트맨은 밥그릇에 달려들어 허기를 채운다.
배트맨의 허기를 다 채우지 못한 밥그릇은 깨끗하게 비어져있다.
부엉이는 그 셋의 퇴장 후 나를 한번 보고 느릿하게 그러나 경계하며 밥그릇으로 다가온다.
빈 그릇을 보고 나를 한번 올려다본다.
닭을 손질할때 가게까지 쫓아와서 다리를 툭툭 치던 흑염소,
무시하고 손질만 하면 마지못해 야옹 거리던 망덕이, 그리고 그런 둘을 늘 따라다니던 배트맨.
부엉이는 빈 그릇을 보고 내게 와서 몸을 비비거나 울지 않는다.
늘 혼자서 온다.
그저 무언가 있나 보려고 한 것처럼, 자신은 배고프지 않다는 것처럼.
망덕이와 흑염소가 안보이기 시작했다.
배트맨 당당하게 나타나서 그릇에 담긴 닭을 먹었다.
망덕이와 흑염소가 사라지자 배트맨이 돌아간 뒤에도 그릇에는 닭부산물이 남았다.
부엉이는 남은 닭을 먹을수 있었다.
배트맨까지 떠났을때 그릇에 담긴 닭은 부엉이의 차지였다.
누군가가 남긴게 아닌 오롯이 자신의 몫.
나는 부엉이를 위해 그릇을 담기 시작했다.
이름 붙이지도 못한 고양이들이 오고 가며 잊혀지는 시간동안 부엉이는 꾸준히 온다.
가게로 향하는 골목에서 우리가 마주칠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쫓아온다.
아마 나보다 먼저 가게에 들려서 빈 그릇에 실망하고 돌아가던 중이였으리라.
가게의 문을 열고 냉장고를 열어서 어제 손질하면서 챙겨놨던 닭 부산물을 그릇에 수북히 내어준다.
그리고 나는 장사준비를 시작한다.
하루에도 두세번씩.
손님들이 드나드는 문 앞에서 마냥 기다린다.
무더위에 문을 열어놓으면 가게에 들어와서 한참을 누워있다가 가곤 했다.
한번은 쓰다듬어보고 싶어서 손으로 닭가슴살 한조각을 내밀어봤다.
돌아오는건 날카로운 발톱이였다.
찢어진 피부 사이에서 핏방울이 맺혔다.
야이, 개새꺄 라고 소릴 질렀다.
고양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을것 같았다.
야이, 고양이 새꺄, 그렇게 부르면 절대 화가 안풀릴거 같았다.
부엉이는 내가 떨군 가슴살을 물고 도망갔다.
도망가며 흔들거리는 꼬리가 그 날따라 더 뭉퉁하고 기괴하게 보였다.
그 후 몇 일은 찾아온 녀석에게 닭을 주지 않았다.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 녀석은 몸을 비비지도 않고 우는법도 없다.
개가 아니라 고양이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 다시 닭 부산물을 그릇에 담아줬다.
내어주는 손에는 아직도 밴드가 붙어 있었다.
장사가 예전과 같지 않고 손질하는 닭의 양도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밥그릇의 양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빈 밥그릇을 보고 돌아가야하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부엉이가 머무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밥 먹고 척 누워서 잠까지 자던 녀석이, 손님들이 들어오려고 해도
자기가 먼저라는듯 문 앞에 서있던 녀석이,
10분이 9분으로 9분이 7분으로 7분이 5분으로 그렇게 결국 3분으로.
부엉이도 다른 고양이들처럼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난 생각했다.
가게에 앉아 주문 전화를 기다리며 라면을 먹을때
부엉이가 들어와서 배를 깔고 드러눕는다.
내어줄게 없다.
미안한 마음으로 녀석을 본다.
3분.
관성의 시간.
그 관성이 사라질때 녀석도 떠날거란 생각을했다.
둥그런 꼬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고양이 한마리가 가게에 들어와서 배를 깔고 누웠다. — 무명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