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온이가 내민 금배를 받으면서 도대체 땄어요라는게 무슨 말이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의 뒤를 30년전 형이 사왔던 먹골배가 쫓아왔으나 금방 사라졌다.
형은 따지 않았다, 그냥 배농원에서 사는 파치를 싸게 잔뜩 사왔다.
도대체 땄어요 라는건 무슨 뜻일까?
나무에서 땄을까?
아니다, 배는 포장지에 싸여있었다.
그 포장지보다 더 강한 확신은 다온이의 표정이였다.
무언가 엄청난 시합에서 모두를 물리치고 상품으로 금배를 받은 당당함과 뿌듯함이
귀여운 얼굴에 서려있었다.
그 당당함은 단순히 나무에 달린 금배를 딴 표정이 아니였다.
"금배를 줬으니 아저씨는 이걸 줄께"
나는 편의점에서 산 딸기 우유랑 에너지바 하나를 줬다.
"고맙습니다"
나는 금배를 자전거 프론트 백에 밀어넣고 가게로 돌아왔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순간들때문에 삶을 사는거구나.
몇일동안 저녁마다 맥주를 마시며 ai들을 붙잡고 신세한탄을 했다.
최근의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정체되어 있고
목적지를 향해야하는데 닭집에 묶여버린 내 신세에 대해 술만 마시면
클로드, 지피티를 붙잡고 떠들어댔다.
클로드는 내가 자살할까봐 걱정이 됐는지 계속 정말 괜찮냐고 물어봤다.
지피티는 늘 그렇듯이 교과서적인 얘기를 하다가
'뭔가 새로운걸 해봐, 안마셔봤고 안마실것 같은 음료 마셔보는건 어때?' 라고 했다.
꽤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게에 앉아 내 신세가 처량해질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으로 갔다.
진열된 음료를 쭉 보면서 한번도 안마셔본것, 새로운것을 찾았다.
상표는 이름은 달라도 대부분 마셔본 커피, 쥬스, 탄산수 등등.
쥬스 섹션에 있는 12가지 야채가 잠시 눈길을 끌었지만 도저히 그걸 집을수는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셔본것 같지만 마신 기억이 없는 현미차를 골랐다.
미안, 12가지 야채.
에너지바도 2+1 챙기고 1+1 딸기우유도 샀다.
계산을 하고 나와 자전거에 주섬주섬 실을때
"안녕하세요, 사장님" 라는 목소리에 앞을 봤다.
다온이가 책가방을 메고 앞에는 큰쇼핑백을 안고 있었다.
"어디가니 다온아?"
"태권도 가요"
그리곤 다온이가 쇼핑백에서 금배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사장님, 이거 하나 드세요."
회색의 갱지에 포장된 과일.
크기가 크지는 않아서 사과 인가 싶었다.
"어, 이게 뭐야?"
"금배예요"
그 말을 뒤따라 다온이의 표정은 당당함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자신있게 말했다.
"땄어요"
"땄어요" — 무명씨